규방공예

연꽃 피어나자 봉황 날아든다"

아기 달맞이 2010. 1. 25. 21:10

35년간 자수 인생 걸으며 신앙 안에서 자유 찾아
유니세프 성탄카드 작품으로 '연꽃 봉황도' 채택


    바늘귀에 엮인 오색실들이 천을 위 아래로 뚫으며 오간다. 수천 차례 오가기를 반복, 장방틀 수틀에 올려진 천에는 어느새 고결한 연꽃이 피어나고 봉황이 날아든다.
 35년간 홀로 자수 인생을 걸어온 궁중자수 작가 이병숙(아녜스, 58, 서울 가회동본당)씨. 그의 작품 '연꽃 봉황도'는 지난해 유니세프가 발행한 크리스마스 카드 작품으로 채택됐다. 유일하게 한국인 작품으로 그의 궁중자수가 처음 선택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말 유니세프에서 날라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품에 안고 성당으로 향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저는 당신 없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
 기쁜소식을 안겨준 그의 작품 '연꽃 봉황도'는 사실 눈물과 고통의 실로 떠낸 인고의 작품이다.  24살 때, 한상수 자수상의 궁중자수 작품을 보고 자수의 길로 들어선 그에겐 인간적인 시련이 여러번 닥쳤다.
 자수 지킴이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길을 걷는 동안, 그에게 무거운 십자가는 종종 주어졌다. 남편과의 이별, 교수 부임건 무산 등…. 더군다나 오로지 인간문화재가 돼야겠다는 결심으로 앞만 보고 달린 시간 속에서 그는 겸손한 마음을 잃어갔다.
 당시 그는 울다가 다시 수를 놓고, 수를 놓다가도 다시 울며 '연꽃 봉황도'를 완성했다. 스스로 고통스러운 만큼 기아로 고통받는 세계 어린이들도 함께 기억하겠다고 약속하며 작업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저를 아픔에 동참하라고 선택하신 것 같아요. 이제 인간적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기도로 매달리며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한 땀 한 땀 지난한 작업을 이어갔다. 곧 그의 마음은 천을 하늘삼은 새처럼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그의 자수 세계는 전통자수의 정통성을 따르면서도 전통공예의 정신과 미적가치를 재창조해 내는데 있다. 궁중자수가 가진 질서와 견고함 속에서 탄생하는 전통 문양들은 그의 손을 거쳐 생명을 얻는다.
 이제 그는 바늘을 드는데 더는 고통스럽지 않다. 그가 천 위에 수를 놓는 동안 성모님이 그의 마음에 사랑의 수를 놓기 때문이다.  시련이 닥친 만큼 그의 신앙도 단단해졌다. 그런 그에게 꿈이 생겼다. 자수로 성모상을 제작해 세계 곳곳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한국 전통의 미를 품은 성모님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는 1999년 연세대와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궁중자수' 강의를 맡았다.
 이에 앞서 1991년에는 그의 작품 '진연도 병풍'과 '농악도'가 청와대 만찬회장과 대기실에 걸려 대통령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또 한국전승공예대전 장려상, 문화공보부장관상 등 지속적으로 상을 받아왔다.
이지혜 기자
▲ 35년간 묵묵히 궁중자수의 길을 걸어온 이병숙 작가. 그가 수를 놓는 동안 성모님도 그의 마음에 수를 놓는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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