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남녘에 상륙한 봄소식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느린 속도이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북쪽을 향하고 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가장 일반적 신호는 꽃이다. 조금 있으면 붉고 노란 물감이 온 산하를 물들일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수채화다. 카메라가 있다면 어디에 앵글을 맞춰도 한 폭의 작품이 된다. 이처럼 소담스럽게 피워 내는 꽃망울은 `춘심(春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대표적 봄꽃은 어떤 것이 있을까. 동백, 매화, 진달래, 산수유, 벚꽃 등이 꼽힐 것이다.
■동백꽃: 오동도.거문도.보길도.선운사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다 해서, 또는 눈물처럼 꽃을 떨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붉디 붉은 꽃망울은 12월부터 터뜨리면서 5월까지 간다. 그래서 동백은 겨울꽃인지 봄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 가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동백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전남 여수 오동도.거문도.해남 보길도.전북 고창 선운사 등이다. 동백나무가 곳곳에 자라고 있는 오동도와 거문도는 섬 전체가 붉은 동백으로 물들어 있다.
보길도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한 시간 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야 닿는다. 감상 포인트는 세연정, 예송리 해변, 동천석실 등 세 곳이다. 이 가운데 윤선도가 풍류를 즐겼던 세연정 앞의 연못 세연지 주변의 동백은 절경이다.
고창 선운사 동백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보통 3월 말에서 4월에 걸쳐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5000여 평의 보호림에 300년 이상 된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주위를 온통 핏빛으로 물들인다. 4월이면 진달래꽃.벚꽃과 어우러져 알록달록한 장관을 이룬다.
■진달래:
비슬산.영취산
3월 말이면 양지 바른 곳은 어김없이 분홍빛 물결로 출렁인다. 진달래꽃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라는 노랫말이 있을 만큼 지천에 깔려 있다.
이처럼 군락을 이룬 곳이 많은데 대구 비슬산과 전남 여수 영취산이 그 가운데 많이 알려져 있다.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는 비슬산에는 북쪽 정상과 남쪽 조화봉 사이 주능선이 진달래의 주 군락지다. 특히 대견사 터 북쪽 30만여 평의 산자락은 4월이면 온통 분홍빛 천지다. 주 능선에서는 가장 곱고 화사한 진달래 군락지를 구경할 수 있다.
여수 영취산의 진달래는 정상에서 보면 가장 아름답다. 450봉의 동.남.북 삼면이 온통 진달래 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산수유:
구례마을.백사면
봄이면 노란 꽃잎으로, 가을이면 빨간 열매로 사람의 눈을 현혹시킨다. 얼핏 보면 개나리와 혼돈을 일으킬 수 있지만 무엇보다 키가 크다. 자세히 보면 조그만 꽃송이가 가지에 맺혀 앙증맞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산수유 마을인 지리산 구례마을은 3월 중순이면 노란 물결로 일렁인다. 3월 초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4월 하순까지 한 달 넘게 꽃을 피운다. 이곳의 산수유 생산량은 전국의 60%에 이를 정도다.
이천 백사면 경사리와 도립리 일대는 수도권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이름을 얻고 있다. 3만 평 부지에 8000여 그루가 꽃을 피우는데 4월 중순이 돼야 볼 수 있다.
■매화: 섬진강 매화마을
추운 겨울을 관통하며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봄의 전령이다. 깊은 산골 어디에선가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꽃을 피운다 하여 설중매라 불리기도 하는 매화는 이 때문에 예로부터 선비들이 가장 좋아하던 꽃이기도 하다.
매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백운산 자락에 자리한 전남 섬진강 매화마을이다. 3월 초면 꽃을 피우기 시작해 중순이면 절정을 이루는데 4만여 평에 빼곡히 들어선 1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들이 새하얀 띠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매화마을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청매실농원(061-772-4066)이다.
매화마을 북쪽은 화개장터, 동쪽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평사리다. 3월 하순이면 꽃잎을 떨구면서 벚꽃에 봄의 권자를 넘겨준다.
■벚꽃: 진해.송광사.전군가도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피었다 같은 시기에 꽃잎을 떨군다. 강렬할 향기와 고고함을 대변하는 매화가 군자화라면 소박하게 피어나는 벚꽃은 서민들의 꽃이라 할 수 있겠다. 4월 초 꽃을 피우는 벚나무는 중순이면 하얀 눈구름을 만든다. 바람이라도 불면 봄날 `눈꽃의 향연`을 볼 수 있다.
경남 진해는 벚나무의 도시다. 해마다 4월이면 수백 만의 인파가 도시 전체를 뒤덮는 벚꽃 세상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전북 완주 송광사 들머리도 약 2?뼁?걸쳐 100년 넘는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꽃들이 깨끗하다.
전주와 군산을 잇는 26번 국도(일명 전군가도) 100리(40??의 길 양편은 온통 벚나무여서 전국에서 가장 긴 `벚꽃길`로 유명하다. 이 길은 일제가 수탈을 위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아스팔트 포장을 한 도로로 벚나무는 1974년 심어졌다.
모세의 기적과 굴구이를 맛보는 일출여행
12월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일출여행을 꿈꾸게 된다. 특히 새해 일출 때면 수많은 인파에 묻혀 솟아오르는 해는 보지 못하고, 앞사람의 뒷머리와 끝없이 밀려있는 자동차만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일출 명소로 장흥 남포마을을 적극 추천한다. 전남 장흥읍에서 남쪽으로 20여 분을 더 달리면 바닷가에 자리한 용산면 남포리에 자리한 조용한 해변 산악마을이 남포마을이다.
▲ 소등섬 앞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
ⓒ2005 김정수 |
영화촬영지 기념비가 세워진 바로 앞 바닷가에는 솥뚜껑처럼 생긴 섬이 떠 있어 포구를 껴안고 있는 어머님의 품처럼 아늑하다. 소등섬은 700평 내외의 자그마한 무인도로 하루 두 차례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는 곳이다.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면 시멘트 포장길이 드러나 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 남포마을 입구에 자리한 영화 '축제' 촬영장소 기념비 |
ⓒ2005 김정수 |
이로 인해 포구 안쪽은 항상 호수처럼 잔잔하다. 소등섬은 영화에서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던 곳이다. 소등섬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은 일출인데, 그 아름다움은 아직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 조용하게 해돋이를 맞이 하기에 좋다. 수평선이 아닌 건너편 고흥반도의 산위로 해가 떠오르면 하늘과 바다는 발갛게 달아오른다. 소등섬과 방파제를 배경으로 해가 뜨는 풍경이 장관이다.
▲ 소등섬 앞을 관광객이 거닐고 있다 |
ⓒ2005 김정수 |
해가 떠오르면 소등섬 앞쪽의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살로 인해 더 아름다운데, 썰물 때는 소등섬까지 바닷물이 빠져나가기에 일출의 아름다움이 한결 덜하다. 일출시간은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www.kasi.re.kr)로 들어가서 ‘해·달 출몰시간 안내’를 참고하면 된다. 조석표(밀물,썰물시간)는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nori.go.kr)로 들어가서 ‘조석예보’를 참고하면 된다. 장흥지역의 조석표가 안나오는 관계로 위치가 비슷한 녹동(고흥)을 클릭하면 한 달간의 조석표가 나온다.
▲ 바닷길이 열린 소등섬 전경 |
ⓒ2005 김정수 |
겨울철의 경우는 음력으로 11일, 26~27일이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으며, 이날을 전후로 약 3~4일은 일출감상에 좋은 날이다. 반면 일출시간이 간조시간이 되는 음력 6일, 21일은 일출을 보기에 가장 안 좋으며, 이날을 전후로 약 3일간만 피하면 그런 대로 괜찮은 일출을 볼 수 있다.
▲ 소등섬과 방파제 위로 일출이 떠올랐다 |
ⓒ2005 김정수 |
집으로 들어서면 영화의 생생한 감동이 느껴진다. 일반 세트장과는 달리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튼튼하게 지어져 생기가 넘쳐나는 삶의 공간이다. 자유스런 관람이 보장되지 않는 게 단점이기도 하다. 김수진씨의 집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 남포항이 들어서 있다. 남포항에 들어서면 남녘포구의 포근함과 정겨움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입구에서 마을을 바라다보면 동요 '파란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파란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난 찌루 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넘어 파란 나라 있나요
저 파란 하늘 끝에 거기 있나요
▲ 영화 '축제'에 안성기의 집으로 나왔던 당시 이장이었던 김수진씨의 집 |
ⓒ2005 김정수 |
이 마을 앞은 물이 빠지면 남포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장면 등이 영화에도 나온다. 이곳은 사단법인 한국상록회 장흥지회에서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하게 된 곳으로 남포마을 주민들의 고소득원인 굴을 대량으로 채취하는 곳이다.
굴은 11월 하순에서 이듬해 2월 말까지 채취하는데, 이즈음에 찾아가면 싱싱한 굴을 맛볼 수 있다. 특히 굴구이가 별미인데, 이 기간 중에는 비닐하우스를 친 채 굴구이를 판매하는 간이식당이 여럿 들어서서 관광객의 입맛을 유혹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굴을 석화라 부르는데, 화로에 올려놓고 구운 굴을 입안에 넣으면 짭쪼롬한 바다내음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렇게 영화 <축제>의 촬영현장에서 나만의 작은 축제를 만들어 볼 수 있다.
▲ 물이 들어오자 남포항의 갯벌과 소등섬의 바닷길이 사라졌다 |
ⓒ2005 김정수 |
▲ 남포항과 남포마을은 온통 파란색으로 덮혀 파란나라를 연상시킨다 |
ⓒ2005 김정수 |
▲ 굴을 채취하고 있는 마을 주민의 모습 |
ⓒ2005 김정수 |
▲ 물이 빠지면 소등섬까지 갯벌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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