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이 달이 바로]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꽃잎이 지고 새 잎이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임이 없어]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그리도 지루하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그 옷을] 담아 얹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만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이 함을] 열어두고 나를 보신듯이 반가워하실까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께서는 그것을]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에 다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도 대낮 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다님도 끊어져 있다.
[따뜻한 지방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에 있는]
소상강 남쪽 둔덕[전남 창평을 이름]도 추움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 기운을 [부채로]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 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 둔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를 두고,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아, 이렇게 홀로 외로이 지내는] 이 밤은 언제나 샐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 속에 맺혀 있어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名醫]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죽어져서]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그 범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사미인곡 / 현대어 풀이 - 송강 정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