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보다 시원한 여름 별미, 뜨끈하고 칼칼한 애호박국수
[맛난 집 맛난 얘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몽화가락>
장맛비가 잦아드니 땡볕의 연속이다. 예전 같으면 붉은 글씨의 빙(氷)자가 선명한 파란색 얼음집 앞에 심부름 온 애들이 아침부터 줄을 설 때다. 불볕에 몸과 마음이 말라붙은 소금밭처럼 타 들어간다. 저절로 차고 시원한 음식으로 눈이 돌아간다. 냉면도 한 두 번이지 매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냉면 대신 더위를 쫓을만한 음식을 찾아봤다. 이열치열, 우리 조상들의 지혜이자 역설의 피서법이다. 경기도 일산의 고깃집, <몽화가락>에서 만난 애호박국수가 그에 부합하는 음식이었다.
여수 여자 파주 남자의 고추장 향내 짙은 국물
<몽화가락>은 원래 삼겹살과 목살을 파는 고깃집이다. 보통 고깃집에는 고기 외에 식사 메뉴나 고기 후식 메뉴가 있기 마련이다. 애호박국수(6000원)는 바로 고기를 먹은 뒤 입가심으로 먹는 후식 메뉴인 동시에 점심용 식사 메뉴다. 그러니까 서열을 따지자면 애호박국수는 이 집에서 주인공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삼겹살과 목살 맛을 도드라지게 해주는 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주연 존재감 뺨치는 조연이 어디 한 둘인가?
이 집 주인장 장수정 씨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인연이 닿아 전남 여수시립합창단 공연의 반주를 하면서 여수에 오래 살았다. 합창단 피아노 반주와 학원 운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도 음식을 체득했다. 이 집 음식에서 진한 남도 냄새가 풍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장씨는 이때 처음 호박국수를 맛봤다. 그 맛이 너무 좋아 가끔 끓여먹곤 했다. 식당을 차리면서 애호박국수는 어엿한 메뉴가 됐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 김민규 씨는 파주가 고향이다. 파주는 여름철 털레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민물고기에 고추장 풀고 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끓여먹는 음식이다. 부부가 만든 <몽화가락>의 애호박국수에는 털레기의 느낌도 난다. 파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또렷이 기억한다. 동네 뒷산에서 동무들과 땀을 흘려가면서 먹었던 그 얼큰하고 시원한 고추장 국물의 향기를! 애호박국수는 부부의 입맛이 반반씩 섞여 태어난 맛인 듯 하다.
- 애호박국수
더위와 근심거리 확 날려버리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
애호박국수는 이름처럼 큼직하게 썰어 넣은 애호박이 눈에 들어온다. 애호박뿐 아니라 세로로 찢은 버섯과 돼지고기가 들어갔다. 국물은 돼지고기 삶은 물에 고추장을 풀고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맛을 냈다. 면은 칼국수용 면인데 굵기가 일반 칼국수보다 가늘다. 삶는 시간을 줄이고 양념 간이 잘 밸 정도의 굵기다.
면은 먼저 삶은 뒤 따로 장만한 양념 국물에 되직하게 끓인다. 면 속에 국물 맛이 스며들게 하고 조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익힌 면을 돼지고기, 새송이 버섯, 애호박과 함께 국물에 넣고 끓인다. 이때 특이하게도 양파를 넣지 않는다. 국물에 필요한 단맛을 애호박 혼자 충분히 감당해내기 때문이다. 의외로 애호박에서 나오는 달큰한 맛이 만만치 않았다.
애호박은 단맛 뿐 아니라 씹는 느낌도 좋다. 부드럽게 입 안에서 부서진다. 새송이 버섯의 쫄깃한 식감, 칼국수 면발의 매끄러운 느낌과 함께 경쾌하게 씹힌다. 국물 낼 때부터 들어간 돼지고기 살점도 넉넉하다. 점심 식사용 애호박국수는 양이 엄청 푸짐하다. 고기를 즐긴 뒤 입가심하는 후식용(4000원)과, 면류를 싫어하는 손님을 위해 면 대신 밥을 넣은 애호박국밥(6000원)도 있다.
고추장 베이스인 국물은 생각보다 텁텁하지는 않다. 자극적인 매운 맛은 없지만 칼칼한 자극이 대뇌에 금방 도달한다. 한 그릇을 비우는데 콧등에 한두 방울, 이마에 두세 방울 정도의 땀이 소요된다. 애호박국수를 꼭 여름에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로 속을 채우면 땀이 쫙 빠진다. 땀과 함께 온갖 근심거리며 마음의 노폐물도 빠져나간다. 식당 문을 나서면 사방에서 청량한 바람들이 사정없이 달려든다.
- 목살
10일 숙성시킨 목살 삼겹살에 남도풍 찬류도 푸짐
앞서 말했듯 이 집은 본시 고깃집이다. 10일 정도 숙성시킨 목살과 삼겹살(180g 1만3000원)을 판매한다. 적당한 숙성을 거쳐 육질이 부드럽고 풍미가 우수하다. 곁들여 내오는 찬류도 아주 풍성하다. 먹음직스런 간재미 무침과 마른 김에 채소 겉절이와 시래기 부침개가 나온다. 밑반찬으로는 알타리 장아찌, 갓 장아찌, 대파김치, 갓김치가 있다. 여기에 된장찌개와 소스로는 갈치속젓에 통마늘이 나온다. 쌈채로 상추 외에 원하는 손님에게는 특이하게도 고수나물도 제공한다.
잘게 자른 시래기를 넣고 부쳐낸 시래기 부침개, 먹기 좋게 양념을 가미해 미감을 한층 고조시킨 갈치속젓은 다른 고깃집과는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입에 짝짝 붙은 갈치속젓으로 만든 갈치속젓 비빔밥(6000원)도 있다. 뚝배기에 밥을 익혀 밑에 살짝 누른 구수한 밥과 쿰쿰하고 짭짤한 젓갈 맛이 자꾸 회를 동하게 한다.
벽면에서 영화 <서편제>의 유봉, 동호, 송화가 손님들에게 걸어 나온다. 그들은 동호의 북소리에 맞춰 유장하게 진도아리랑을 부른다. 청산도에서 촬영한 그 유명한 롱샷 장면이다. 상추에 고기 한 점 놓고 마늘을 갈치속젓 듬뿍 찍어 얹어서 싸먹으면 어느새 나도 남도의 흙먼지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곤 흥얼거리게 된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 으헤~
아~리랑 응응응...
<몽화가락>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394번길 19-9, 031-907-9595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