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느질 공장 세워 미래 장인들 키우고 싶어요"
[주목, 이사람] 희귀병 딛고 디자이너된 서율 ‘율앤미’ 실장
소년은 원래 공군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갑자기 찾아온 병마가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콩팥이 제 기능을 못하는 'IgA 사구체신염'이란 희귀병이었다. 공군은커녕 병역면제 판정을 받게 생겼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소년의 눈에 어릴 때부터 공군 다음으로 관심이 많았던 패션 분야가 들어왔다. 디자이너가 되기로 작정한 그는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갔다. 자본금 3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은 2013년 연매출 10억원을 기록할 만큼 성장했다. 의류 브랜드 '율앤미' 디자인실장 서율(23)씨의 사연이다.
초여름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23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 율앤미 작업실 겸 아틀리에에서 서씨와 만났다. 반팔 차림의 기자는 땀을 줄줄 흘리는데, 서씨는 말쑥한 긴소매 티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서도 끄떡없어 보였다. 워낙 실내에서만 생활하기도 하지만 의류점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갖춰 입는' 게 버릇이 됐다고 한다.
희귀병을 극복하고 주목받는 의류디자이너로 성장한 서율씨는 "고급스러운 손바느질 공장을 세워 손바느질 의류를 이탈리아의 명품처럼 고급화·산업화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떻게든 공군이 되고 싶어 전북 고창에 있는 항공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병세 악화로 2학년 때 결국 자퇴를 해야 했죠. 몸이 안 좋아 일반 고교는 다닐 수 없어 방송통신고에 등록해 고교 과정을 마쳤어요. 병원에 누워 있었던 기간이 6개월쯤 될까요.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서울패션아카데미에 입학해 학업과 손바느질 견습생 생활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씨가 자신감을 얻은 건 2011년 영국 런던의 컬렉션인 '알라모드(Alamode)' 패션쇼 무대에 서면서부터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안서를 보냈는데, 덜컥 참가자로 뽑혀 세계 각국에서 온 16개 팀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 당시 20세였던 서씨는 17명의 참여 디자이너 가운데 최연소였다.
"그때 한복 원단으로 현대적 느낌의 여성용 드레스를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왕관 등 장신구까지 포함해 100가지 이상의 아이템을 준비했어요. 저 빼고는 다들 30, 40대의 원숙한 디자이너였는데, 그런 분들과 한 무대에 나란히 오를 수 있다는 게 무척 영광스러웠죠."
2012년에는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상호 교류의 해'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한국 패션 디자이너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 그는 남녀 정장 위주로 30여벌의 의상을 선보였다. 떠오르는 시장인 중국을 직접 겪어본 것은 장차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옷을 구상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몸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웠던 서씨는 온라인 수업이 많은 서울디지털대학교 패션학과로 옮겨 학업을 계속했다. 어느덧 마지막 학기가 되어 올여름이면 학사모를 쓴다. 그 사이 '서율'이란 이름도 제법 알려져 유명 백화점 등에서 입점 제안이 여럿 들어왔다. 2011년 5월 문을 연 율앤미는 3년 만에 연간 매출액 10억원대의 건실한 업체로 자리 잡았다. 튀지 않고 점잖으면서도 은은한 매력이 있는 맞춤옷을 선호하는 30, 40대 여성 기업인들이 그의 주된 고객이라고 한다.
"아침 8시까지 종로구 광장시장에 가서 수입 원단을 살펴봅니다. 이태원 사무실에 돌아오면 낮 12시쯤 돼 있죠. 그때부터 새벽 1시까지 옷을 만듭니다. 주문이 밀려 있을 때나 행사 기간 동안에는 새벽 5시까지 일하기도 해요. 집, 시장, 작업실, 공장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생활의 전부라고 할까요. 옷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도 하지만 실은 친구가 거의 없는 편이에요.(웃음) 심심할 때에는 혼자 차를 몰고 경기 파주 등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곤 합니다."
서씨가 당장 이루고 싶은 꿈은 오는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신인 디자이너 패션대상'에 응모해 입상하는 것이다.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대회는 전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 '최고의 등용문'으로 통한다.
아직 20대 초반인 그에게 "보다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이냐"고 재차 물었다. 서씨는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고급스러운 손바느질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싶어요. 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손바느질 장인이 국민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술자를 무시하는 풍조가 있죠. 젓가락 문화에서 보듯 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탈리아처럼 그것을 고급화·산업화의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어요. 젊은 학생들이 미래의 장인을 꿈꾸며 한땀 한땀 손바느질에 매진하는 공장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글=김태훈 기자, 사진=김범준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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