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

오래되고 낡은 천으로 무엇을 만들까? (이은주/인드라망생명공동체)|

아기 달맞이 2013. 2. 28. 07:38

[소모임 이야기]

오래되고 낡은 천으로 무엇을 만들까?



3년 전쯤, 평일 밤늦게 주말까지 정신없던 회사 일이 갑자기 대폭 줄어들던 시기가 있었다. 모처럼 매일 칼퇴근 하고 주말마다 토. 일 이틀을 꼬박꼬박 쉬면서 해보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할 수 있었다.


텃밭을 분양받았다. 다섯 평 땅에 이것저것 심고 거두는 기쁨을 맛보았다. 수영을 1년 넘게 꾸준히 배웠다. 자유형 숨쉬기에서 막혔던 수영실력이 접영까지 늘었다. 출근길마다 한 시간씩 걸었다. 계절의 변화와 풀, 꽃, 새들에 열심히 한눈팔았다. 요리학원에 다니고 한식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쳤다(떨어졌다). 재봉틀 강좌를 찾아 가방, 모자, 바지를 만들고 입던 바지도 수선했다. 휴가를 얻어 지리산 2박 3일 종주를 하고 이어서 섬진강 따라 이틀 꼬박 걸었다. 그 휴가를 원래는 제주도로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제주도 사진이 잔뜩 있는 “김영갑”이란 분의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혼자 제주도로 가서 평생을 살면서 사진을 찍다 돌아가셨다. 글 중에 커튼인지 이불인지 그런 것을 천 조각 여러 개를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그렇게 손바느질을 하염없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년 초 회사를 옮겼다. 텃밭도 못하고 수영도 못하고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도 없이 거의 1년이 갔다.


그러다 살짝 여유가 생기던 즈음, 웹 서핑하다가 우연히 우리옷 소모임을 알게 되었다. 천 조각을 이어서 조끼를 만들고 있다는 인터넷 게시판 글을 보면서 ‘아,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모임 공지에 당장 “참석하고 싶습니다.”라고 꼬리 글을 달았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이어졌다.


처음 가던 날은 다들 조끼를 만들고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자그마한 카드지갑을 만들었다. 가볍지만 뿌듯한 시작이었다. 그다음에는 경상도 골무였는데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결석. 그다음에는 장지갑을 만들었으나 똑딱단추를 거꾸로 다는 바람에 “똑딱!” 하고 잠기지는 않는 지갑이 되었다. 이 장지갑은 보관할 현금, 통장 등을 넣어 서랍에 고이 모셔놓았다. 그다음으로는 다용도 주머니. 끈으로 여미는 것인데 말 그대로 다용도이므로 각자 원하는 크기로 만들어서 원하는 용도로 쓰는 거였다. 나는 생리대를 넣어서 가지고 다닌다. 예쁜 주머니를 들고 다니니까 아주 살짝, 축제기간인 듯 느껴진다. 그다음으로 수저집… 삼베로 만들어 간단히 수도 놓았다. 그다음으로 만든 모자는 뭔가 15% 부족한 느낌이 드는 색 배합이긴 하지만 밝은 노랑 바탕이 기분을 참 산뜻하게 한다. 그다음으로 최근에는 광목천으로 브래지어를 만들었다. 짧은 조끼처럼 만들었는데 거의 웃옷을 하나 만드는 느낌이었다. 바이어스 처리도 하고 이번에는 똑딱단추도 제대로 달고 고무줄도 넣고 민소매 일부는 실을 당겨 오글오글하게 해서 입체감도 냈다. 입고 보니 딱 맞고 예뻐서 내놓고 입고 다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손재주도 없고 눈썰미도 좋은 편은 아니어서 만든 것들이 그렇게 우아하거나 멋지지 않지만, 그래도 보람은 꽤 크다.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들… 게다가 만들어지는 결과물 이상의 선물이 있다. 만드는 과정, 그 시간이다. 알록달록 예쁜 천위에 한 땀 한 땀 손을 놀리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별로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얼마가 들어도 좋다. 하다가 잘못돼서 뜯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완성해서 크게 쓸모가 없어도 상관없고, 쓸모가 있으면 금상첨화가 된다.


9월 말에는 통바지를 만든다고 하는데, 벌써 기대가 된다. 만들어서 입을 생각을 하니 그렇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바느질거리가 많을 것 같아서도 그렇다. 긴긴 바느질… 허리도 만들고 옆선도 붙이고 발목도 만들고 끈이든 고무줄이든 붙이고…내 손으로 하나하나, 전부 다 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바지… 입으면 얼마나 뿌듯할까. 이 글이 소식지에 실려서 읽힐 즈음에는 바지가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뜯었다 붙였다 하느라고 계속 만드는 중 일지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서른이 코앞인데 어째 아직도 그걸 알 수가 없느냐며 아는 누군가가 한탄했다. 난 마흔이 가깝도록 그걸 알기 어렵더라고 대답했다. 요즘은 무엇을 잘하는가 보다 무엇이 좋은지에 더 관심이 간다. 좋아하는 것들을 자꾸자꾸 찾아서 죽을 때까지 재미나게 살고 싶다. 손바느질이 그 중 하나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한다. 한 달에 한 번인 모임 날짜를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은근히 기다린다. 이 기회를 빌려, 꼬박꼬박 모임을 이끌고 계시는 이영희 선생님께 깊이, 그리고 맛있는 온갖 떡을 먹어볼 기회를 주신 태수님께도 살짝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은주님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텃밭에서 무․ 쪽파․ 시금치․ 깻잎․상추․ 고구마순을 열심히 가꾸고 신나게 수확하는 도시농부이기도 하다. 인드라망 소모임 활동인 바느질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