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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아기 달맞이 2012. 12. 24. 06:48

치열했던 대선이 끝난 지금, 비로소 거리에서 선거 현수막보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신 사진을 보니 유럽과 미주는 물론, 그리스도교 인구가 적은 일본이나 이슬람 인구가 대다수인 아랍에미리트에도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이런 트리는 상업 홍보적인 면이 크지만,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해 연말을 축하하며 눈을 호사하도록 해주는 공공미술의 역할도 한다.

 

17일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등(燈)이 켜져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왜,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기 시작한 걸까? 왜 나무에 둥근 볼(ball)과 장난감 같은 것을 달게 됐을까?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작은 전나무를 통째로 가져다가 여러 가지 장식을 다는 풍습은 16세기 독일 지방의 문헌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고전문학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언급된 경우도 19세기 이전까지는 독일 문학에 집중돼 있다. 한 예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이 있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어린 시절,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양초, 과자, 사과 등으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앞에 나타나 마치 천국에라도 간 것처럼 황홀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나온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다른 문학을 보면 20세기 초까지 크리스마스 트리에 말린 사과, 호두, 아몬드, 사탕, 과자 등 진짜 먹거리를 인형, 장난감과 함께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을 나무에 오래 걸어 두면 상하지 않았을까? 사실 옛 풍습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성탄절 바로 전날에 꾸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나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이 나무에 걸린 과실, 과자, 장난감을 떼어서 선물로 갖는 것이다.

즉, 본래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요즘처럼 눈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 꾸러미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동안만 화려한 모습으로 서 있다가 장식된 예쁜 과자와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모두 선물로 내주고 나뭇가지만 남는 존재였다. 현대에 와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선물용이 아닌 장식용이 되어 오랜 기간 서 있게 되면서 사과와 호두는 인공 볼로 대체되고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그저 나무 자체를 위한 장식으로 변하게 됐다. 하지만 원래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꼬마들에게 나눠 주고 사라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한편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풍습은 18세기까지는 주로 독일 지방에 한정돼 있었다. 다른 유럽 지역에서는 성직자들의 반대가 심했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성당과 교회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사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 기원이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니었다. 많은 민속학자는 유럽에 그리스도교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 게르만족의 동지 축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동지 직후는 1년 중 해가 가장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때라 태양이 소생하는 시기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소생을 축하하면서 생명력을 상징하는 상록수 가지를 꺾어다 집을 장식하는 축제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촛불을 켜는 것은 제의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긴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정해진 것도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교도의 마음을 열고 흡수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원시·고대 종교에서 태양이 부활하는 시기로 중요하게 여긴 동지 직후를 택한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가 어느 계절에 탄생했는지는 성서에 기록돼 있지 않다. 이렇게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종교 간 화합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크리스마스 트리는 또 다른 종교 간 화합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 조계사는 17일 일주문 앞에 세 개의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등을 세웠다. 종단 차원에서 3년째 세우는 트리로 통 큰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보다 몇 년 전에도 성당에서 석가탄신일 축하 현수막을 거는 등 우리나라에는 종교 간 관용과 화합의 모습이 있어 왔다. 외국인들이 특히 신기해 하고 부러워하는 문화다.

대선이 막 끝난 이 시점에 이런 관용과 화합이 더 절실하다. 박근혜 당선인은 직선제 부활 후 첫 과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표가 야당 후보에게 갔음을 잊지 말고 통합과 상생의 공약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얼어붙은 마음을 나눔과 화합의 상징인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 속에 녹이고 객관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향후 정책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