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 곰배령에서 눈이 훤해지는 꽃밭을 만났다. 이른 봄에 피는 홀아비바람꽃이 늑장을 부려 뜻밖의 장관을 선사했다.
우리네 야생화를 만나고 왔습니다. 야생화를 찾아 백두대간 언저리를 굽이굽이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건 온몸으로 자연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우리 토종 야생화는 아주 작습니다. 만개했다고 해도 새끼손톱만 한 게 대부분입니다. 키도 작고 꽃도 잘아 풀숲 아래를 허리 숙여 들여다봐야 겨우 찾을 수 있습니다.
강원도 강릉 선자령의 큰앵초 군락에서 산들바람이 멎기만을 기다리는 야생화 사진가(사진 위쪽), 선자령 정상즈음 양지꽃이 무리지어 환하게 피어 있었다(사진 아래).
야생화를 만날 때마다 누가 맨 처음 이름을 지어 줬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아직도 꽃 이름이 헷갈리지만 이름만큼은 한 번 들으면 여간해서 잊히지 않습니다. 어여쁜 꽃이 이름은 어찌나 얄궂은지요. 줄기를 꺾으면 똥물처럼 노란 즙이 나온대서 애기똥풀, 쥐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쥐오줌풀입니다. 꽃말은 또 어떻고요. 우리네 봄꽃을 대표하는 얼레지는 꽃이 치마폭처럼 발랑 뒤집혀 핀대서 꽃말이 ‘바람난 여인’입니다. 조금 짓궂긴 해도 우리네의 질박한 해학이 묻어나 마냥 정겹습니다.
야생화 한 송이에 가슴 아픈 인생사가 깃들어 있기도 합니다. 강원도 인제 곰배령에서 만난 족도리풀은 궁녀로 뽑혀 시집도 못 가고 고생만 하다가 중국으로 팔려가 쓸쓸하게 죽은 한 산골 소녀의 사연을 품고 있었습니다. 처녀로 죽은 한이 서린 양, 꽃은 영락없이 시집갈 때 쓰는 족두리 모양이었습니다.
강원도 정선 분주령의 얼레지.
야생화를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업어 가고 싶은 욕심도 생깁니다. 그러나 야생에서 자라야 야생화입니다. 꺾거나 캐어 가면 금세 훼손되고 맙니다. 깽깽이풀 등 수많은 야생화가 그 욕심 탓에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실 야생화 트레킹은 주의해야 할 게 참 많습니다. 그래서 가장 까다로운 생태여행으로 꼽힙니다. 우선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뽑아서도 안 됩니다. 탐방로를 벗어나서도 안 되며, 야생화를 해칠 수 있는 애완동물이나 카메라 삼각대도 반입 금지입니다. 강원도 정선·태백의 분주령과 인제 곰배령은 사전에 신청을 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곰배령은 하루 200명, 분주령은 하루에 300명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태백 검룡소는 입장 전에 신발 바닥을 깨끗이 털어야 합니다. 외래종 유입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성가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네 야생화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week&의 발걸음이 머문 꽃밭은 강원도 산간 오지입니다. 초여름이면 그윽한 은방울꽃 향기로 뒤덮이는 강릉 선자령, 너른 산마루에 야생화 사태가 벌어지는 인제 곰배령, 사람 손을 안 타 희귀한 야생화가 길섶에 널린 정선 분주령 등등. 모두 야생화 애호가 사이에서 성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야생화를 보고 있노라면 움츠렸던 마음이 유순해집니다. 자그마한 꽃 들여다보느라 무뎌져 있던 감각도 기민하게 깨어납니다. 싱그러운 여름의 초입, week&이 권하는 여행은 우리네 야생화입니다.
글=손민호·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